이 안에도.... 저 있네요...^^
90일째, 아름다운 여주길을 순례단의 목소리로 들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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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일째<자연은 그 모습 그대로이나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만 변합니다>
자연은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따라 달리 표현되고 이해되었을 뿐입니다. 오늘도 순례단은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아주 작은 모습을 보았을 뿐이지만,
그속에서 공존의 지혜를 찾기 위한 길을 떠나왔습니다.
자연을 우리의 이해에 따라 바라보지 않고 자연의 모습 그대로 이해하는
‘공존의 지혜’를 찾아가는 여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삼합리에서 하루를 시작하여>
강물이 흐르는 대로 순례단의 발걸음도 흘러갑니다.
하루 하루의 발걸음이 매일 매일 새롭고, 물길 흐름 하나 하나가 새롭습니다.
발길과 물길이 만나는 곳에서 새로운 인연과의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생명의 세상과 평화로운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인연과 인연이 이어지고 새로움이 계속되면서 이 걸음의 시작과 끝이 다르고,
생명의 강이 들려주는 무수한 이야기를 따라 걸어가는 발걸음 역시 처음의 발걸음과 많이 다를 것입니다.
흐르는 물 따라 순례길을 가는 것인지, 순례길을 따라 물이 흐르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강물이 가두어져 정체되는 것을 거부하고 앞으로 나아가듯이,
순례단 역시 하루 하루 계속 발걸음을 이어가며 어느새 90일의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오늘은 흥원창이라 불리는 흥호리 창말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제껏 몇 번 이 지역의 경관을 소개한 적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다시 이곳을 보며 후회를 합니다.
자연의 모습을 몇마디 인간의 말과 단어로 묘사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요?
어제까지 부론면 흥호리 지역에서 바라볼 때와
이곳 여주군 점동면 삼합리 지역에서 바라보는 남한강의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억겁의 세월동안 그곳에 있었을 그 모습을 마치 새롭다는 듯이 호들갑떨며 이야기하는 것이 우스운 듯,
남한강은 오늘도 새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여정은 삼합리 강변을 출발하여,
청미천 합수머리 - 중군이봉 옆 강변길 - 도리 - 소무산 옆 아홉사리(고살래고개)
- 흔암리 선사유적지 - 남한강교 - 우만리 - 단현리 - 이호대교 - 남한강유원지 - 여주대교까지의 일정이었습니다.
이 길에서 남한강(여강)은 충청북도 음성군 금왕읍에서 흘러온 웅천과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서부터 발원하여 흘러온 청미천(淸渼川)이 하나로 합류되어
흥원창에서 남한강과 합류가 됩니다.
또한 이 지역은 충청도와 경기도, 강원도에서 흘러온 물길이 하나로 만나는 세물머리가 되며,
지역 역시 충청도와 경기도, 강원도가 하나의 지역에서 만나는 삼합리라 불리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연양천,점봉천, 간매천, 걸은천, 가정천, 완장천, 금당천 등이 남한강에 합류합니다.
<순례단에 놀란 고라니가 뛰고 백로는 날아가고>
삼합리를 지나 도리에 이르는 길에 청미천(淸渼川)이 남한강에 합류됩니다.
푸르렀다는 청미천에서 이제는 물길을 찾아보고 힘들고,
청미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곳에 있었다는 용늪 역시 물길이 말랐습니다.
삼합리는 앞서 섬강과 남한강, 청미천이 만나는 세물머리의 합수점이어서 삼합리라고도 하며,
혹은 경기도와 충청도, 강원도가 만나는 지역이라 삼합이라고도 합니다.
오늘의 순례 출발 장소인 ‘삼합리’의 대오마을 지명 유래가 ‘깊은 오지’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바로 옆의 마을인 ‘도리’ 마을 자체도 도호동 주민이 이주해서 ‘도래(桃來) - 되래 - 도리(道里)’라 불리고 있으나,
마을 자체가 오지여서 여러 전란에서 안전하게 환란을 모면하였다 하여
‘환란이 돌아간 지역’이라 하여 ‘되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지역은 남한강(여강)과 청미천이 만나는 지역으로 넓은 삼각주가 둔치로 발달한 지역입니다.
갈수기이며 농번기인 요즘 청미천 물을 농업 등으로 많이 사용하다보니
수량이 얼마되지 않아 순례단은 신발을 벗지 않고도 두물머리 합수부를 건넜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자갈과 고운 모래가 언덕을 이루는 그곳을 지나는 낮선 순례단의 대열에 놀란 듯
옆에서는 고라니가 사방으로 뛰고, 앞에서는 여러마리의 백로가 하늘로 황급히 날아올랐습니다.
평소 사람 그림자 하나 없던 곳에 깃발을 든 긴 대열로 나타난 순례단에 얼마나 놀랐을까요?
청미천 물이 남한강에 합류되는 지점에는
지난주에 이 곳을 순례하였던 대열의 발자국과 고라니 발자국이 얼켜있었습니다.
그곳은 일상적으로 사람은 찾아볼 수 없고
고라니와 백로, 그리고 멀리 떠나야 할 시기를 놓쳐버린 철새만이 주인인 오지였습니다.
순례단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두물머리의 합수부 모래에 남겨져 있는 고라니 발자국을 봅니다.
우리 사회에 고라니와 같은 야생동물이 자유로운 노닐수 있는 야생의 공간이 얼마나 있을까요?
작년부터 운하 때문에 남한강(여강)을 따라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게 치솓았다 하더군요.
모든 것이 경제적 이윤으로만 가치 판단이 되는 시대에,
야생동물 한 마리 마음 편히 쉴 공간도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여 마음이 아파옵니다.
순례단은 이곳을 벗어나 도리 마을 끝자락에 있는 홍일선 시인의 집에서 환대를 받으며
잠시 여정을 풀고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강을 따라 산길을 걸었습니다>
홍일선 시인의 집을 떠난 순례단은 도리에서 흔암리 선사유적지로 나가는 길에 산길을 걸었습니다.
‘아홉사리’라 불리는 소무산 자락의 고개를 넘었습니다.
본래 ‘사리’는 ‘국수 혹은 새끼 사리'와 같이 구불구불하거나 혹은 고랑을 뜻하며,
고개 단위로는 가장 작은 단위라 합니다.
아홉사리길은 영락없이 구불구불하여 산에 나 있는 소로길이 맞는가 싶었습니다.
본래 도리는 충주 이남의 선비들의 과거보러 서울가던 길이라 합니다.
그래서 이 길 역시 ‘아홉사리 과거길’이라 부른다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충주에서 이곳 여주까지 강변을 따라 오면 그리 멀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참조 - 도리늘향골마을 홈페이지 http://dori.or.kr)
아홉사리 길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간간이 보여주는 남한강의 모습 역시 비경이었습니다.
숲길을 지나면서 낙엽밟는 소리만이 들립니다.
무척 아름다운 산길을 걸었습니다.
사람의 손길을 탄 흔적은 없고, 간혹 보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게 군사용 참호만이 보일 뿐입니다.
나지막한 고개길을 따라 푹푹 쌓인 낙엽을 밟는 것이 미안하고,
낮선 사람의 발걸음에 놀란 어린 뱀 한 마리만이 좌우로 바삐 길을 찾아 움직이려고 애씁니다.
쓰러진 길가 나무에는 이름모를 꽃 한송이가 피어있고,
눈길가는 곳마다 들꽃이 천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이 강변을 걸었던 지난 2월 순례길이 생각납니다.
건너편 바위늪구비 습지를 지날 때 거센 바람과 함께 눈이 내려 천지를 하얗게 뒤덮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눈보라에 강도 하얗고 산도 하얗던 그 장소를 이제 봄꽃을 따라 산길을 걸어 오르고 있습니다.
순례단이 걸어가는 물길은 그대로이나
강을 따라 순례단의 마음에도 생명이 차고, 산천에도 생명의 기운이 돌고 있습니다.
<흔암리 선사유적지를 지나서>
순례단이 오전 일정을 종료한 지역은 아홉사리 고개를 지나 흔암이 선사유적지입니다.
경기도 기념물 155호인 흔암리 선사유적지는 3천년이 된 ‘탄화미’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대부분의 선사유적지는 강변이나 강변이 보이는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으나,
이 곳 선사유적지는 강변 산을 뒤편에 두고 위치해있더군요.
잘 알려진 선사유적지인지라 많은 기대를 하였으나, 몇 개의 움집터가 복원되어 있어을 뿐이며,
주변의 작은 녹색 펜스로 보전되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곳이 선사유적임을 알리는 안내문의 설명은 너무나 일반적인 내용일 뿐이었습니다.
또한 흔암리 선사유적지 표지석은 도로변에 한적한 곳 소나무 밑에 위치해 있더군요.
사실 흔암리 선사유적지가 위치해 있는 흔암리는 우리나에서 가장 먼저 농경문화가 일어난 곳입니다.
이곳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탄화미(벼의 화석)’은 기원전 11~13세기 것으로 파악되어,
청동시 시대에 이미 벼농사를 지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농경문화 발상지로 주목받았습니다.
또한 청동기시대의 주거지로 추정되는 움집(BC 5~6세기)도 발견되었습니다.
여강(남한강)을 따라 흔암리 일대에는 많은 유적들이 현재도 나오고 있다 합니다.
일전에 운하를 추진하는 분들은 1년만에 강을 따라 유적을 발굴한다고 하였다는데,
참 가당치 않은 이야기입니다.
한반도 역시 강을 따라 형성된 선사시대 문화유적과 이후 역사 유적지가 많은 상황인데,
이를 8개월간의 지표조사와 3개월만에 발굴을 하겠다니 이게 제정신인지 모르겠습니다.
<폐쇄된 다리에서 남한강을 바라보았습니다>
순례단은 오후에 남한강교와 이호대교를 지났습니다.
강변 토사채취로 인해 다리 기능을 상실한 남한강교에 올라 남한강의 드넓은 모습과 아름다움을 살펴보았으며,
이후에는 마을길을 이용하여 이호대교에 이르렀습니다.
폐쇄된 남한강교 위에서 본 남한강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남한강 푸른 물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넓은 둔치와 바위늪구비 같은 습지.
그 습지에 서식하는 무수한 생명들도 운하로 인해 훼손될 것입니다.
골재채취로 인해 멀쩡한 교량 하나가 폐쇄된 것도 바보같은 일이지만,
운하로 인해 더 많은 멀쩡한 다리와 교량들이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어리석은 일이
우리 사회에 다가오고 있으니 갑갑할 노릇입니다.
남한강 강변길을 따라서는 참 가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더군요.
들녘을 파헤쳐 전원단지로 만들겠다는 계획에 따라 높은 석축을 쌓고,
산을 파헤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흔암리 선사유적지 뒤편의 바위산조차 파헤져지고 있더군요.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전원주택(田園住宅)은 ‘농경지나 녹지 따위가 있어서 시골의 정취를 느낄 수 있게 교외에 지은 주택’이라 하는데,
저렇게 산과 들을 파헤지고 어디서인가 무수한 돌들을 파헤져와서 집을 짓고 살면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일정은
“남한강변을 잘 걸었습니다. 선사유적지에서 스님과, 신부, 교무님과 함께한 예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걸음은 100일이지만 우리의 염원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걸음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이필완 목사님의 기도로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정지홍(불교환경연대)님은 “운하는 생길 수가 없습니다. 국민들이 강을 알아가고, 운하의 실상을 알면 반드시 저지될 것”이라며, ”운하는 경제성이 전혀 없는 이상한 정책이기에, 저는 직원들 및 지인들에게 메일을 통한 홍보와 서명운동을 벌여서라도 운하 저지를 위한 활동을 하겠다”고 합니다.
강윤실(종교환경회의 싸이버팀 간사)님은 “걸어오면서 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연은 보고 듣는 만큼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를 느끼게 해줍니다. 이러한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 왔습니다. 또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을 후손에게 사진으로만 남겨서는 않 된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는 아토피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데 강 전체가 시멘트로 발라지면 아토피와 같은 질병은 더욱 심각해 질 것”이라며 운하로 인해 발생할 질병에 관해서도 우려하였습니다.
김애희(교회개혁실천연대)님 “오늘 강 길을 따라 걸으며 순례단과 예배함을 목적으로 참여 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국민은 체한 상태라고 합니다. 광우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어떤 음식을 먹어도 소화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운하도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자연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일부 기득권의 이익 때문에 자연히 훼손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를 머슴이나 종업원 다루려는 사고를 고쳐야 한다”며 혼란한 사회를 걱정하였습니다.
송호일 목사(용인 유무상통마을)님은 “걸어보니 강이 이렇게 흐르는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운하는 일부 소수의 이권이 숨겨져 있는 전혀 실용성이 없는 사업입니다. 사람들을 가슴 아프게 하는 사업”이라며 답답한 심정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현재 정치, 경제, 문화 등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냥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본인 스스로 과거나 미래에 집착하지 말고 현재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환을 촉구하였습니다.
조은혜(세종대 호텔경영학과)님은 “사실 다른 사람의 권유로 종교환경회의 사이버팀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책임감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을 보고 걷다보니 사명감이 생겼어요. 걸으면서 마주오는 차량에 손을 흔들면 답례하듯 먼저 다가가 운하의 진실성을 알리고 홍보하면 국민들도 이에 호응하여 운하도 저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생겼다”며 먼저 순례 소감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운하를 반대하는 이유는 후세가 사용할 자연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서이며, 정말 운하는 해와 실만 있고 득이 없는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지도자 한 사람의 이름을 남기겠다는 의도는 탐욕에 기인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발상을 저지하는 것이 우리의 도리이며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꼭 막아야 할 일”이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 정확한 출발 장소 및 시간은 도보순례단에게 전화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 도보순례 1일 참가 일정과 수칙은 www.saveriver.org 공지사항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2008. 5. 11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많이 참석합시다.국민의 단합된 모습을 보여 줍시다. 정말 짜증나게 하는 정부입니다. 운하반대 했더니 이젠 뭐라고!!!
치수한다는 말로 교묘히 바꾸어서 국민들을 기만하려고 별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어요. 안 속는다 안속아!!!!
감사합니다. 김이태박사님의 양심선언으로 조금은 힘을 얻더라구요 그래도...거짓말정부...더 많은 양심선언자들을 배출하길 바랄 뿐입니다.
함꼐 걸으며 성찰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에 많은 분들이 오셨으면 좋겠네요~^^
잘 보고 갑니다~
시위가 무사히 끝났습니다...그러나 그날밤 촛불문화제 소식 때문에, 그리고 오늘 새벽 소식때문에도 마음이 무겁네요.
정말 우리나라의 주인이 국민이었으면 좋겠네요.
요즘보면 나라주인이 MB고 안방마님은 뉴라이트보수단체나 고소영 내각이지 않나 싶네요.-.-
어케 한방에 수출할 방법 없을까요 그런 무리들은..ㅡㅡ;
나라가 이꼴이 되어가는게 참... ㅠㅠ
3개월이 30년 같네요. 정말 30년 전 광주로 되돌아간 것 같습니다...
현실을 믿기 힘들정도로 막판으로 치닫는듯한 모습이더라구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했음을 현실감있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연...어떻게 결론이 날지...
4대강 정비 사업의 본질은 한반도대운하사업이라고 김이태박사의 양심고백이 있었습니다.
2MB가 말도 되지 않는 사업으로 전문기술직들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미친소 들여오고 미친물길 뜷고
소수집단의 돈벌이만 생각하는 2MB는 국민의 건강과 우리의 후손이 함께 살아가야 할 이 국토는 안중에도 없는 듯 합니다.
이 미친 2MB를 정신바짝 차리게 만들어야 하는데!!!
용자..용자가 필요해...라고 중얼거리던 제게
진정한 용자 김이태박사님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부디 다른 전문기술직도 정신차리고 영혼을 되찾아 양심선언의 뒤를 이었으면 좋겠어요.
미친소,미친물길..
폭력진압에 강제진압...
조만간 사단이 나는거 아닐까 싶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가나 똑똑히 지켜보고 기억해두어야겠어요.
안 그래도 촛불문화제 소식 때문에 마음이 많이 무겁습니다.
언론은 참석자들과 다른 이야기들을 해대고 있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많은 글들은 모두 괴담이고 유언비어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이 촛불문화제가 불법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민영화, 광우병, 대운하, 영어몰입교육에 왜 다들 거부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란 걸
이제 알 때도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인디언 학살에 대한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인디언이 말을 듣지 않아 땅을 빼앗을 수 없던 백인들이 1억명 가량의 인디언을 학살했죠..
가끔 저들의 논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그런 무식한 가치관 같아 아찔할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든 국민의 의사전달을.. 그 방법을 찾아야합니다.
언론을 믿지 못해 직접 나선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에 동조해 여기저기 소식을 퍼나르는 저같은 사람들이...
그나마 '왜곡언론'에 저항하는 것이다..라고 자위해보긴 하지만
그마저도 못알아듣고 소통이 부족했다면서 소통을 거부하는 그들이 있어
촛불은 더 밝아질 것 같네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논리..
시국이 이러한데 종부세 완화를 검토하는 패악...
하루하루 아찔합니다.
평화가 깨어진 일상은 혼란스럽기만 하고요...
그러나 무관심과 방관으로 돌아갈 생각은 이제 추호도 없으니
끝을 보기는 볼 때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