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하백지화'를 함께 이야기하러 참석하는 곳에서
빼놓지 않고 듣게 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운하라는 화두를 던져준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의외지요?
'운하백지화'를 외치는 이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운하'를 쟁점으로 띄우려고 노력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고마움'이라니요.
하지만 진심입니다. 저 또한 그 생각에 동의했고, 저도 절로 그런 말이 나왔으니까요.
왜냐구요?
'운하백지화'라는 공감대로 만난 많은 이들과의 소중한 인연...
그리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있는 대화... 그리고 '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운하'라는 화두로 만난 이들과 문명사의 새로운 기점을 마련하는 문화운동에 참여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자신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는 "운하백지화를 위한 생명의 강 지키기 기독교행동 출범식"에 다녀왔습니다.
4월 18일 금요일 오후 3시, 용산의 청파감리교회에서 열렸습니다.
교파, 교단을 막론하고 '운하백지화'를 위해 한자리에 모인 기독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 좋은" 자연을 파괴하는 운하는 백지화되어야 한다는 뜻에 마음을 모았습니다.
1부의 '여는 예배'로 시작한 발대식에서 설교를 맡으신 성굥회 박경조 주교님은
"하나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는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장로가 대통령이 되어 대운하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마치 기독교가 탐욕스럽고 파괴를 자행하는 천박한 물질문화의 첨병에 선 종교라고 생각할까 우려된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이어지는 2부 출범식의 시작은 노래패 "평화울"의 노래로 시작되었습니다.
"힘을 내어라 바다로 가야지" 라는, 냇물에게, 강에게 하는 노랫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래를 듣는 내내 위에서 막고 아래서 막아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강, 영산강이 떠올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영산강이 "힘을 내어 바다로 가는"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운하'라는 화두를 통해 우리 강의 소중함을 더 많이 깨닫고 배우는 요즘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같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 전에는 아름다운 우리 강과 그 주변풍경에 무관심했음을 인정하면서...
운하로 인해 우리 강의 아름다움과 소중함, 그 안에 깃든 생명과 우리 생명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더욱 절실히 깨닫고 알게 되는 계기로서...
탐욕의 시대, 욕심의 집합체인 '운하'라는 화두를 던져준 이명박 대통령에게
어떤 면에서 고맙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오늘 발대식에는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 순례단의 단장이신 이필완 목사님도 오셨습니다.
순례현장의 이야기를 전해주시면서 응원해주는 이들에게 감사의 말씀도 전하셨습니다.
걷다가 왔으니, 또 걷고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3부 가두행진이 시작되기 전, 청파교회 앞마당에서는 민족미술인협회에서 진행하는 퍼포먼스가 있었습니다.
감정이라곤 전혀 읽을 수 없는 하얀가면은 마치 생명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없이 운하를 추진하려는 이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파란 건설현장용 헬멧은 '친환경'이라는 거짓 타이틀을 내세운 채 운하를 '지구온난화의 대책'이라는
거짓 이미지를 둘러씌워 홍보하는 이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신(死神)을 상징하는 듯한 검은 망토, 파괴와 죽음을 연상케 하는 칼로
피의 강을 흐르게 하는 모습을 연출한 퍼포먼스는 사뭇 비장하고 처참해보였습니다.
무자비함 앞에서는 피밖에 흐를 것이 없다는 것이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알고 미래를 개선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과거, 자연을 파괴함으로써 인간이 치른 대가를 사람들은 잊어서는 안되고 또한 되풀이해서도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시 깨닫지 못하고 같은 역사를 되풀이한다면,
결과 또한 같으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어지는 가두행진에서, 운하백지화 종교환경회의 상황실장님의
"이명박 대통령은 미래세대를 생각하라"는 광고판을 또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늘 저 광고판을 걸치고 다니시는 상황실장님의 저 문구가
오늘따라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선조들이 강을 통해 생명을 유지해 오고, 그랬기에 제가 존재할 수 있었으며...
미래세대 또한 강에 기대어 살아갈 것임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상기온으로...여름기운이 완연한 행진의 길을, 폴리스라인과 함께했습니다.
그래도 선 안에서 함께 "이 선을 넘지" 않는... 경찰들이 인상적입니다.
구호를 외치지도,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면서 행진은 진행되었습니다.
현수막 두개와 7명의 인원이 뿌리는 홍보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자동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지나가는 시민들은 큰 짜증 없이
행렬을 바라봐주었습니다.
이 좁혀지지 않는 차이는 제복과 평상복의 차이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선을 넘지 마시오!" 라는 주황석 선...
그 선을 넘지 않으면서 함께 걷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존중, 생명과 생명 존중 사이에서
모두가 선을 함께 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남습니다.
운하에 대해 끊임없이 말이 바뀌고 있습니다.
반대의 목소리는 일관되는데 반해 찬성의 목소리는 이들이 '게릴라'인가 싶을 정도로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오락가락하는 주장과 방향 속에 일치되는 것은 "하겠다"는 의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하겠다'는 의지가 강해질수록 '운하백지화'의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그런데 물의 흐름은 방향은 일관될지라도 속도와 성격은 변화무쌍합니다.
어딘가는 느린듯 진중하게, 어딘가는 격하게, 어딘가는 폭발하듯 흐를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격하고 폭발하듯 하는 흐름과 대치하는 상황까지 치달을 경우가 걱정됩니다.
그렇다면 주황 선에서 함께 걷는... 우리네 아들이며 오빠며 동생이며 혹은 조카이자 친구인 이들도,
다치는 길을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일이 없도록, 운하백지화는 더 많은 국민들의 마음과 입을 통해
빠른 속도로 공유되어야 할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첫 삽을 뜨기도 전에 66%의 반대의견이 80%, 90%를 넘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이... 서로가 서로를 다치지 않게 하는 길일 것입니다.
가두행진에서는 어떤 피켓도 구호도 없었습니다.
다만 말없이 두개의 현수막을 들고 걸었을 뿐입니다.
"한반도가 원하는 것은 운하가 아닌 생명의 강입니다"
"생명의 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지키는 일입니다"
행진은 서울역 광장 앞에서 멈췄습니다.
민족미술인협회가 새로운 퍼포먼스를 준비중이었습니다.
서울역 광장에서는 뜻밖의 연사를 만났습니다.
2007년 블로거뉴스 베스트기자 대상을 수상하신, "쓰레기 시멘트" 문제를 고발한 블로거 최병성님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최병성님 또한 목사님이십니다.
과거 소망교회에서 있기도 했음을 밝히시며 현재 소망교회 담임목사에게
현 교회의 장로인 이명박장로를 바른 길로 인도할 것을 권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최병성님의 짧은 연설은, 왜 운하는 백지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무엇보다도 간결한 설명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퍼포먼스는 한반도가 그려진 지도 위에 참석자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적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인간이 자연을 포기하면 자연도 인간을 포기할 것입니다" 라는
순례단의 하루소식 중 읽었던 메시지를 적었습니다.
어쩌면 진정 장로대통령, 이명박씨를 걱정하고 도우려는 사람들은
"운하백지화를 위한 생명의 강지키기 기독교행동" 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이 무사히, 큰 탈 없이 5년의 임기를 마칠 수 있으려면 운하는 백지화되어야 합니다.
경제논리와 갖가지 끌어붙이는 논리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 운하입니다.
강의 생명을 내버려두자는 것이 운하백지화의 주된 논리가 아닙니다.
그 강에 기대어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네 삶의 생명의 중심인 강을 지켜야
우리도 제대로 살 수 있음을 일깨우자는 것입니다.
추진하고자 하는 이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들먹이기도 하고, "한번 해보지도 않고 왜들 반대하느냐"고도 말합니다.
하지만 '한번 해보고' 나면 키시미강의 생태를 잃고 건설비용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복원하려 했으나
완전한 복원도 이루지 못한 미국의 플로리다와 같은 꼴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보기 전에 '한번 해본' 케이스가 있다면, 그 케이스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10년의 건설 후 완공되자마자, 철거와 복원을 시작했던 플로리다의 사례를 배울 때입니다.
콘크리트 벽을 세웠다가 철거하는 것은 쉬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벽을 세우는 일에 희생된 생명은 다시 살릴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이 죽었을 때, 아무리 슬퍼해도 다시 살릴 수는 없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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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럼 말도 있었지요?
기독교인 장로가 하려는 운하는 기독교인들이 막아야 한다.
내 강 내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지켜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 맞습니다...
"기독교인 장로가 하려는 운하는 기독교인들이 막아야 한다"
창조주 하나님 명예를 위해서라도~ 꼭 그리하셔야지요..
감사합니다^^
비밀댓글 입니다
맞습니다...
약도 없지요...
답도 없구요...
그런 것엔 어떤 약으로 다스려야 하는지,
최후의 처방전을 내려야 하는 날이 오지 않게...
스스로 깨달아야겠지요.
하나님이 창조한 자연에 매스를 데려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아플 노릇입니다...
그넘의 땅값, 개발, 단기간의 경제성장률 때문에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국민의 혈세를
사용해야 하는건지...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분이라면 진심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군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와
"다스리라" 했다는 것을 두고 기독인들이 다투더군요...
그러나 제 짧은 소견엔 "보시기에 좋았던" 것이 먼저고
"그것을 잘 지켜라" 라는 의미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진정 나라를 생각하는 '장로 대통령' 이라면
진심으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그 풍경을 지킬 줄 알아야겠죠.
저는 대운하하면 그 저속한 발상에 화가 날 정도입니다.
제 꽁트 트랙백 걸어놓았습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랄께요.
장로님게서 빨리 **하고 **을 회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꽁트 잘 읽었습니다.
가벼이 읽을 내용은 아닌 듯 하네요.
용서와 사랑을 자신의 부도덕을 감싸주는 도구로 이용해서는 안될 일이겠죠.
회개한다면 그 이후의 행동은 달라지는 것이... 맞는거겠쬬?
맨날 용서받고 또 같은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게 무슨 종교인입니까.
사기꾼이지...
트랙백 감사합니다^^
이제 이메가와 소망측에서 이단을 선포하면 되는 겁니까?
좋은 일 하고도 기독타이틀 때문에 전혀 공감가지도, 돕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이곳에선 운하 반대를 외치지만 딴데가선 단군상 목자르고 토착신앙이나 전통문화예술을 쓸어버리자고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니까요.
섣부른 일반화에 좋은 일을 가려 보시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시는 것이
사람을 집단으로 대하시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해보기도 전에 '너네는 그렇게 말해왔잖아' 라고 말한다면 새로운 대화는 이루어지지도 않겠죠.
아, 그런데 참.
제가 왜 변명을 하고 있는지...
저는 종교적 쟁점과는 상관없이
모인 이들의 '하나의 뜻'을 선택하고 집중하렵니다.
논점일탈보다는 선택하고, 집중하는 자세로 뜻을 모으는 것은 어떨까요?
잘 보고 갑니다. 장로 대통령의 망령된 행보를 기독교인 스스로가 정화하려는 노력이 보이네요.
종교간, 계파간의 건강한 소통을 기대해 봅니다.
부디 이 목소리가 지나치게 소수의 목소리만은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종교간, 계파간의 건강한 소통...
이를 계기로 생긴다면 다 나은 일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