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로 수장될 위기의 문화재, 여주 신륵사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석종비, 석등>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신륵사 조사당의 뒷편으로 올라가면
나옹화상의 사리탑과 탑비, 그리고 석등이 있습니다.
신륵사와 마지막 인연을 맺은 나옹화상이 입적하자 그 제자들이 세운 부도입니다.
보제존자 석종과 석종비, 석종 앞 석등을 보러 가는 반듯한 돌계단은 57개입니다.
나옹스님이 입적한 나이인 57세를 따서 57개의 계단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사진으로 보니 계단이 정말 끝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방 도착한답니다^^; 실제로 가시게 된다면 두려워 마시고 가보세요~
푸른 돌이끼가 살짝 낀 그 상태 그대로... 정말 멋있는 사리탑입니다.
대학시절 유적답사를 다니며 보았던 많은 부도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만한 멋진 작품이네요.
보물 2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은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종 모양의 몸체를 가진 석종형 부도라서 '~~~부도' 가 아닌 '석종'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나 봅니다.
탑의 몸체인 탑신(塔身)에는 아무런 꾸밈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떨어지고,
그 위에는 불꽃무늬를 새긴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냥 드는 생각은....'절제미'가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꾸민 듯, 꾸밈 없는 듯... 그러면서도 그 자체의 선이 참 아름다운데다,
주변의 소나무숲과는 왜 그렇게 조화를 잘 이루는지...
스님들의 묘는 독특하게 부도라는 형식으로 이어져내려오고 있죠.
그런데 이런 형식으로 묘를 꾸미다보니 사실 입적한 스님을 기리는 무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껏 많은 무덤을 파왔던 저이지만...
사실 부도는 정말 무덤의 범주와는 거리가 먼 듯 하네요.
그러나 역시 부도라는 기념물이 죽은 이를 기리고자 하는 형식의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이 비석, 보물 229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입니다.
보제존자 나옹을 기리는 탑비는 3단의 받침, 비몸,
(비석의 몸...탑의 몸이란 뜻의 탑신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석 위에 얹은 지붕돌이, 비록 재료는 돌이지만 지붕이라는 개념답게
기왓장 올린 목조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네요..^^
나옹화상의 석종비의 비문은 고려 말 충신이자 당대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이 지었습니다.
게다가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는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의 글씨를 썼다고 하네요.
신륵사와 관계된 대표적인 인물 중에는 지공화상, 나옹화상, 무학대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목은 이색을 들 수 있습니다.
목은 이색은 고려 말 유명한 삼은(三隱)중 한 사람입니다.
삼은이 뭔고 하니, 고려삼은, 여말삼은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말기에 성리학자로서 충절이 높았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가 있었는데
이 세 사람의 호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은'을 따서 '삼은' 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목은 이색은 고려 말 뛰어난 성리학자로 원나라에서 유학도 하고
고려로 돌아온 후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었습니다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가 풀린 후 이성계가 새로운 조선의 신하로 삼으려 했으나...
고려의 충신이었던 목은 이색도 포은 정몽주와 같이 끝내 거절하고, 신륵사에서 여생을 마칩니다.
그가 아직 고려의 신하이던 시절 나옹화상과 신륵사에서 교류했었고,
나옹화상이 입적한 후에는 왕명을 받아 비문을 지었는데 그 탑비가 바로 이 석종비입니다.
그리고 보제존자석종 옆에 자리한 이것은 보물 231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입니다.
석등은 석종부도를 밝히기 위해 서 있는, 용도상으로는 가로등과 같습니다.
그런데 가로등이... 보통 가로등은 아니지요...;;;
사찰에는 부도 옆 말고도 여러곳에 석등이 있는데요,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화강석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등불을 놓는 화사석은 특이하게도 납석(곱돌)이라고 합니다.
석질이 화강암이 좀 거친 반면, 납석은 석질이 정말 곱습니다...
납석은 반질반질한 것이 양초와 같은 질감을 가진 돌인데요,
그런 질감을 가진 만큼 조각을 해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겠죠.
게다가 납석은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석등의 화사석으로는 딱이네요.
아무튼 이 양초같은 질감의 고운 화사석에 새겨진 비천상을 보자구요..ㅎㅎ
일반적인 석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다른 곡선이 펼쳐지네요...
화강암에서 보는 곡선은 절제와 우아함이 흐른다면,
납석에 내려앉은 이 곡선들은 정말 화려해 보입니다~~
감탄감탄... 정말 양초처럼 반질반질한 표면에 아름다운 곡선이 마치 돌 위에 수놓아진 듯 했어요...
불교문화재를 답사하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이 비천상입니다.
비천상은 사전적 의미로는 "하늘에 살면서 하계 사람과 왕래한다는 여자 선인(仙人)을 그린 그림"인데요,
불교적 의미로는 "불국정토에 사는 천인의 일종으로 날아다니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주고 꽃을 뿌리며 부처님을 공양 찬탄하는 천인의 일종" 이라고 합니다.
신륵사의 비천상은 특히 화강암이 아닌 납석에 조각되어 있어서
그 섬세한 부드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얼굴이 심하게 뭉개져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천상의 얼굴들은... 음....ㅡㅡ; 아들을 낳고자 하시는 어머니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네요.
불상의 코를 잘라 가루를 내어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이 있었는데...
전 옛날에 코미디 프로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그냥 웃고 넘어갔는제 진짜였다더군요!
석등에 아로새겨진 비천상의 코가 너무 작았던걸까요....;;; 얼굴이 홀라당;;;;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ㅡㅡ;
그런데 상대적으로 난간과 반대편에 위치해서 사람 손이 잘 닿지 않을만한 부분에는
비천상의 얼굴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여기도 역시 코는 홀라당;;;; 날아갔지만, 그래도 눈매가 잘 드러나 있고 얼굴의 윤곽도 살아있네요.
비천상 옆에는 발톱이 네개인 사조룡이 기둥을 휘감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역시 발톱의 표현도 섬세하네요.
57개의 계단을 올라 소나무 숲 가운데 있는 신륵사 보제존자석종과 석종비, 그리고 석등.
이렇게 멋진 부도탑 위치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신륵사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던 나옹화상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슬슬 내려올 시간입니다.
57개의 계단 밑에는 세 스님을 기리는 조사당이 보입니다.
고즈넉한 과거의 세계에 잠시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느낌이네요...
조사당과 석종으로 이어지는 문화재를 보며 잠시 빠졌던
신륵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들의 과거 역사를 되짚어보며
고려말, 조선초의 불교문화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되었습니다.
사실 전 과 전공 때문에라도 학기마다 지역별 유적답사를 다니면서
지역별로 유명한 사찰문화재를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목조건물, 석탑, 부도탑, 탑비, 석등, 당간지주...
그런데 그 유적에 얽힌 이야기를 아무리 미리 조사하고 간다 하더라도,
저만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사전조사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해당 문화재의 학문적, 지역적, 그리고 역사적 의의를 공부하느라 바빠서였을까요...
막상 사찰과 그 안에 얽힌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그닥 밝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어떤 것이든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로선
문화재 해설해주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재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문화재와 관련된 역사 속에 담긴 '이야기'를 되짚으며 감상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설명이 없이, 혼자서 유물이나 유적을 감상하게 되더라도
그냥 '아 저게 유물이구나' 아니면 '아 저게 그냥 유적이구나'
또는 '옛날 것이니까... 좋은거다' 라는 감상에서 한발짝 더 나가서
그 유적과 유물이 내가 살아온 세월의 몇배가 넘는 세월을 견디어 내려오면서
담고 있는 역사 속의 이야기를 함께 느껴보시는 것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내력이 없다면, 비천상의 지그시 감고 있는 눈매를 보고 상상해 본다든지요.
그 당시 대표적인 미인의 얼굴이 그 안에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나옹스님이 입적한 나이인 57세를 따서 57개의 계단을 만들었다고 하네요.
사진으로 보니 계단이 정말 끝이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방 도착한답니다^^; 실제로 가시게 된다면 두려워 마시고 가보세요~
푸른 돌이끼가 살짝 낀 그 상태 그대로... 정말 멋있는 사리탑입니다.
대학시절 유적답사를 다니며 보았던 많은 부도 중에서도 기억에 남을만한 멋진 작품이네요.
보물 228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륵사 보제존자석종은
고려 후기의 석종형 부도 양식을 잘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종 모양의 몸체를 가진 석종형 부도라서 '~~~부도' 가 아닌 '석종'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나 봅니다.
탑의 몸체인 탑신(塔身)에는 아무런 꾸밈 없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떨어지고,
그 위에는 불꽃무늬를 새긴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냥 드는 생각은....'절제미'가 있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꾸민 듯, 꾸밈 없는 듯... 그러면서도 그 자체의 선이 참 아름다운데다,
주변의 소나무숲과는 왜 그렇게 조화를 잘 이루는지...
스님들의 묘는 독특하게 부도라는 형식으로 이어져내려오고 있죠.
그런데 이런 형식으로 묘를 꾸미다보니 사실 입적한 스님을 기리는 무덤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껏 많은 무덤을 파왔던 저이지만...
사실 부도는 정말 무덤의 범주와는 거리가 먼 듯 하네요.
그러나 역시 부도라는 기념물이 죽은 이를 기리고자 하는 형식의 하나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것이,
바로 이 비석, 보물 229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입니다.
보제존자 나옹을 기리는 탑비는 3단의 받침, 비몸,
(비석의 몸...탑의 몸이란 뜻의 탑신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그리고 지붕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석 위에 얹은 지붕돌이, 비록 재료는 돌이지만 지붕이라는 개념답게
기왓장 올린 목조건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네요..^^
나옹화상의 석종비의 비문은 고려 말 충신이자 당대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이 지었습니다.
게다가 부드러운 필치의 해서체는 유명한 서예가인 한수의 글씨를 썼다고 하네요.
신륵사와 관계된 대표적인 인물 중에는 지공화상, 나옹화상, 무학대사와 함께
마지막으로 목은 이색을 들 수 있습니다.
목은 이색은 고려 말 유명한 삼은(三隱)중 한 사람입니다.
삼은이 뭔고 하니, 고려삼은, 여말삼은이라고도 하는데
고려 말기에 성리학자로서 충절이 높았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가 있었는데
이 세 사람의 호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은'을 따서 '삼은' 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목은 이색은 고려 말 뛰어난 성리학자로 원나라에서 유학도 하고
고려로 돌아온 후 우왕의 사부(師傅)가 되었습니다만, 조선이 건국되면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가 풀린 후 이성계가 새로운 조선의 신하로 삼으려 했으나...
고려의 충신이었던 목은 이색도 포은 정몽주와 같이 끝내 거절하고, 신륵사에서 여생을 마칩니다.
그가 아직 고려의 신하이던 시절 나옹화상과 신륵사에서 교류했었고,
나옹화상이 입적한 후에는 왕명을 받아 비문을 지었는데 그 탑비가 바로 이 석종비입니다.
그리고 보제존자석종 옆에 자리한 이것은 보물 231호 신륵사 보제존자석종 앞 석등입니다.
석등은 석종부도를 밝히기 위해 서 있는, 용도상으로는 가로등과 같습니다.
그런데 가로등이... 보통 가로등은 아니지요...;;;
사찰에는 부도 옆 말고도 여러곳에 석등이 있는데요,
중생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화강석을 사용하여 만들었고, 등불을 놓는 화사석은 특이하게도 납석(곱돌)이라고 합니다.
석질이 화강암이 좀 거친 반면, 납석은 석질이 정말 곱습니다...
납석은 반질반질한 것이 양초와 같은 질감을 가진 돌인데요,
그런 질감을 가진 만큼 조각을 해도 좀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겠죠.
게다가 납석은 불에 타지 않고 잘 견디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석등의 화사석으로는 딱이네요.
아무튼 이 양초같은 질감의 고운 화사석에 새겨진 비천상을 보자구요..ㅎㅎ
일반적인 석등에서는 볼 수 없었던 남다른 곡선이 펼쳐지네요...
화강암에서 보는 곡선은 절제와 우아함이 흐른다면,
납석에 내려앉은 이 곡선들은 정말 화려해 보입니다~~
감탄감탄... 정말 양초처럼 반질반질한 표면에 아름다운 곡선이 마치 돌 위에 수놓아진 듯 했어요...
불교문화재를 답사하다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이 비천상입니다.
비천상은 사전적 의미로는 "하늘에 살면서 하계 사람과 왕래한다는 여자 선인(仙人)을 그린 그림"인데요,
불교적 의미로는 "불국정토에 사는 천인의 일종으로 날아다니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주고 꽃을 뿌리며 부처님을 공양 찬탄하는 천인의 일종" 이라고 합니다.
신륵사의 비천상은 특히 화강암이 아닌 납석에 조각되어 있어서
그 섬세한 부드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얼굴이 심하게 뭉개져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비천상의 얼굴들은... 음....ㅡㅡ; 아들을 낳고자 하시는 어머니들과 함께 사라졌다고 하네요.
불상의 코를 잘라 가루를 내어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이 있었는데...
전 옛날에 코미디 프로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길래 그냥 웃고 넘어갔는제 진짜였다더군요!
석등에 아로새겨진 비천상의 코가 너무 작았던걸까요....;;; 얼굴이 홀라당;;;;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ㅡㅡ;
그런데 상대적으로 난간과 반대편에 위치해서 사람 손이 잘 닿지 않을만한 부분에는
비천상의 얼굴이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여기도 역시 코는 홀라당;;;; 날아갔지만, 그래도 눈매가 잘 드러나 있고 얼굴의 윤곽도 살아있네요.
비천상 옆에는 발톱이 네개인 사조룡이 기둥을 휘감아 올라가고 있습니다.
역시 발톱의 표현도 섬세하네요.
57개의 계단을 올라 소나무 숲 가운데 있는 신륵사 보제존자석종과 석종비, 그리고 석등.
이렇게 멋진 부도탑 위치는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신륵사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던 나옹화상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슬슬 내려올 시간입니다.
57개의 계단 밑에는 세 스님을 기리는 조사당이 보입니다.
고즈넉한 과거의 세계에 잠시 빠졌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느낌이네요...
조사당과 석종으로 이어지는 문화재를 보며 잠시 빠졌던
신륵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들의 과거 역사를 되짚어보며
고려말, 조선초의 불교문화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게되었습니다.
사실 전 과 전공 때문에라도 학기마다 지역별 유적답사를 다니면서
지역별로 유명한 사찰문화재를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목조건물, 석탑, 부도탑, 탑비, 석등, 당간지주...
그런데 그 유적에 얽힌 이야기를 아무리 미리 조사하고 간다 하더라도,
저만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사전조사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해당 문화재의 학문적, 지역적, 그리고 역사적 의의를 공부하느라 바빠서였을까요...
막상 사찰과 그 안에 얽힌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기에는 그닥 밝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어떤 것이든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로선
문화재 해설해주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재미'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꼭 추천드리고 싶은 것은...
문화재와 관련된 역사 속에 담긴 '이야기'를 되짚으며 감상해보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설명이 없이, 혼자서 유물이나 유적을 감상하게 되더라도
그냥 '아 저게 유물이구나' 아니면 '아 저게 그냥 유적이구나'
또는 '옛날 것이니까... 좋은거다' 라는 감상에서 한발짝 더 나가서
그 유적과 유물이 내가 살아온 세월의 몇배가 넘는 세월을 견디어 내려오면서
담고 있는 역사 속의 이야기를 함께 느껴보시는 것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내력이 없다면, 비천상의 지그시 감고 있는 눈매를 보고 상상해 본다든지요.
그 당시 대표적인 미인의 얼굴이 그 안에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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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의 핵심은 대운하다
FROM einblue의 스토리 2008/03/27 13:42 삭제총선이 며칠 남지 않았다. 만인의 웃음거리가 되자, 이번 총선 공약에서 대운하를 슬쩍 빼겠다고 한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겠단다. 자기들이 말하는 경제 살리기의 핵심이 대운하 사업이 아니던가? 자기들이 말하는 경쟁력 강화의 핵심이 영어 몰입 교육 아니던가? 그런데 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총선에서 정작 핵심 공약을 빼버린다. 한 마디로 일단 다수당이 된 다음,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대운하 사업을 밀어붙이겠다는 얘기다. -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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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돌가루가 드시고 싶으시면 길바닥에 있는 거 하나 줏어다가 잘 갈아먹으면 될텐데 말이죠.^^;;;;;;
이야기가 담긴 문화재가 정말 살아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문화재에 담긴 이야기를 기억해주는 이가 많은 것이
또 문화재를 살아있도록 하는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왜 그곳에 있으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줄수록...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커질테니까요.
그런의미에서...
그것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제대로 취급받지 못했던 숭례문 생각에 울적해지네요..^^;
대운하로 고스란히 사라지는거네요?
전 대운하가 뭔지 잘 모르지만 진짜 이건 아닌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할지, 수장될지 아직 아무 말도 없는 분야가
바로 문화재 분야 같습니다.
게다가 공사를 하려면 일단 지표조사-시굴조사-발굴조사의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현재 지표조사를 해야 하는 필수면적을 넓히겠다고 합니다.
규제를 완화해 공사를 하는데 지장이 없게 하겠다는 뜻인데... 현 정부의 역사인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항목이라고밖엔... 할말이 없더군요.
비밀댓글 입니다
아...^^;
'무덤을 봐왔던' 이라고 생각하셨군요~
근데 공교롭게도;;;
'무덤을 파왔던'이 맞기는....맞습니다^^;
제가 무덤을 파는 일을...좀 했었어요..ㅡㅡ;
무덤과 각별한 인연이 있던 학과인지라..^^;
약간 놀라셨죠? ㅎㅎ
원래 고고학이 쫌 그래요~(해골하고 무지 친합니다 저~)
헉..;;그렇군요
정말 대단하신듯~ 정말 놀랐습니다~
달빛효과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뵙게 되는거 같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진다는 건 매우 서글픈 일인데요..
휴일입니다
편한 하루 되시길..
안녕하세요 이그림님~~^^
방문 감사합니다..
소중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게,
이그림님 서글플 일이 없게...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힘내야죠~ㅎㅎ